지혜와 복덕으로 일선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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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신문 새해칼럼

토끼와 거북이 / 일선 스님

옛 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는 도반으로 먼저 깨달음을 성취하면 깨우쳐 주기로 약속 하고 토끼는 산으로 거북이는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끼는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거북이에게 서로 만나서 탁마를 하자고 했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토끼는 거북이를 얼싸안고 저건너 산꼭대기에 경주를 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먼저 나누고 싶었습니다. 토끼는 깨달음인 ‘집안 일’과 실천인 ‘길가는 일’이 둘 아님을 알기에 도반인 거북이가 행여나 깨달음에 머물러 실천이 없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고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님을 투철하게 깨달은 토끼는 먼저 정상 가까이 도착하여 잠시 낮잠을 자기로 하였습니다. 걸음이 굼뜬 느림보 거북이 도반이 깨워 함께 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믿음대로 거북이는 토끼를 깨워 느리고 굼뜬 자기를 기다려 준 고마운 도반을 얼싸안고 산꼭대기에 함께 올라 떠오르는 찬란한 햇살을 바라보며 기쁨을 함께 하였습니다.
    
거북이는 산을 내려오는 길에 토끼의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섬으로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태우고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껏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체 강물을 일미의 한맛으로 포용하는 바다의 덕과 파도와 물이 둘이 아니듯 선정과 지혜가 본래 둘이 아님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통해서 토끼는 영리하지만 자만에 빠지기 쉽고 거북이는 비록 굼뜨지만 성실하고 근면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차별상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그동안 토끼처럼 빨리 빨리를 통해서 커다란 성취를 이루었지만 속도에 지치고 보턴을 눌러야만 해결되는 디지털의 피곤함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북이처럼 느림에는 평화와 여유가 있지만 정에 치우치고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서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양변의 치우침을 떠나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마당에서 만날 수 있는 쇼셜 네트워크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세라토닌의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행하는 사람은 깨달음에 집착하여 보살행이 나오지 않고 깨달음이 없는 실천에 매몰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를 쌍수해야 합니다. 불교 안에는 수행의 방편이 많지만 육조단경과 보조국사는 정혜쌍수를 참다운 수행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융합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다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정견이 바로 서면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고 깨달음과 실천이 평등해서 복과 지혜가 함께하게 됩니다.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태워 하나가 되어주고 거북이가 나타나면 토끼는 숨지만 부르면 바로 대답하여 큰빛이 되어 줍니다.
    
사람은 서로의 차이가 있어 작용은 다르지만 모두가 본래 차별없는 참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해에는 토끼와 거북이처럼 너와 나를 남과 북을 서로 등에 태우고 대립과 갈등보다 지혜와 복덕의 큰 걸음으로 나아가길 발원해 봅니다. 

토끼와 거북이 /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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